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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지나서야 마지막 헬리콥터가 떠났다. 새비지는 소마에 마취 덧글 0 | 조회 1,850 | 2021-04-13 18:17:47
서동연  
자정이 지나서야 마지막 헬리콥터가 떠났다. 새비지는 소마에 마취되고, 오래 끌었던서구에서는 민주주의 원칙들이 공표되고, 유능하고 양식 있는 수많은 홍보담당자들은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합리적 논쟁으로 그들을 설득하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그 정보에 비추어 현실적인 선택을 하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모든 일들은 그야말로 흘륭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서구 민주주의, 특히 미국에서의 프펄퍼갠더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닌 양분된 하나의 개체를 지닌다. 편집 분야에서는 어쩌다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지킬 박사 진실과 이성에 반응하는 인간 본래의 능력에 대한 존 듀이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매우 기쁘게 증명할 수 있는 선전가가 간혹 있다. 그러나 이 훌륭한 사람은 단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조직적 분야만을 다룬다. 광고 분야에서는 반이성적이기 때문에 반민주적인 하이드씨 아니 오히려 하이드 박사라고 해야 옳다. 왜냐하면 하이드는 이제 심리학 분야에서는 박사이고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석사학위를 땄기 때문이다 가 발견된다. 이 하이드 박사는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인간성에 대한 존 듀이의 믿음에 부응한다면 실로 매우 언짢아할 것이다. 진칠과 이성은 지킬의 관심사이고, 하이드의 문제가 아니다. 하이드는 동기부여 분석가이며, 그의 임무는 인간의 나약함과 결점을 연구하고, 인간의 의식적인 사고와 행동을 결정짓는 무의식적인 욕망과 두려움을 조사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을 보다 더 나은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도덕가적인 정신에서 혹은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단지 인간의 무지를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를 고용한 고용주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 그들의 비합리적인 면을 이용하기 위하여 그런 일을 한다. 그러나 결국, 자본주의는 죽었고, 소비자운등이 왕이다 그리고 소비자운동은 (사기적인 교활한 기술까지도 포함한) 모든 설득 기술로 시를 읊는 세일즈 전문문가들의 서비스를 요구한다. 자유기업체제하에서는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사람들이 오래 된 것들에 마음이 끌리는 것을 원치 않아요. 우리는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달라라는 말과 바뀔지도 모른다. 만일 그러한 변혁이 일어난다면, 가장 강력한그러나 이 새로운 통찰력과 기술에 대해 논하기 전에, 나치 독일에서 거의 실현될 뻔했던 그 악몽에 시선을 돌려보자. 8000만 국민의 자주적 사고를 빼앗고, 한 사람의 의도 밑에 그들을 복종시키기 위하여 히틀러와 괴벨스에 의해 사용되었던 방법들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토록 성공적이었던 방법들이 기초로 하고 있던, 인간본성에 대한 이론은 어떤 것들이었는가? 이에 대한 것들은 대부분 히틀러의 말 속에 그 대답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얼마나 정확하고도 명쾌한가! 히틀러는 종족과 역사와 신과 같은 매우 추상적 관념에 대해 칼을 쓸 때 매우 지루해한다. 하지만 독일 민중이나 그들을 다스리기 위해 그가 썼던 통치방법에 관해 쓸 때에는 스타일이 바뀐다. 터무니없는 생각이 정상적인 생각과 자리를 바꾸고, 호언장담이 현실적이고 냉정한 사리판단과 자리바꿈을 한다. 소위 그의 철학적인 역작들 속에서, 히틀러는 다른 사람들의 설익은 생각들을 옮겨놓거나 혹은 엉뚱한 백일몽에 잠기고 있다. 군중과 프로퍼갠더에 대한 그의 생각과 견해를 나타낸 글 속에서는 직점경험에 의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쓰고 있다. 그의 유능한 자서전 작가인 앨런 벌록은 이렇게 말한다. 히틀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동가였다. 유일한 단 한사람의 선동정치가라고 덧붙였던 사람들은 대중정치 시대의 정치적 힘의 특질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히틀러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대중을 움직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히틀러의 목적은 먼저 대중을 움직이고, 그 다음에 그들을 전통적인 애국심과 도덕심으로부터 분리시켜 그가 고안해낸 새로운 전채주의적 질서를 그들에게 부과하는 것이었다(영락없이 최면술에 걸려들고 만 대중의 일치된 견해 속에서). 1939년, 헤르만 라우슈닝은 다음과 같이 썼다. 히틀러는 카톨릭 교회와 예수회에 대한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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